사기 당한 동네 할머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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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이금희(oddo) 기자
오랜만에 진료소를 찾으신 할머니가 진료소에 들어서자마자 어디가 아프다는 말보다 속상하고 화나는 이야기를 먼저 풀어 놓으셨다.
열흘쯤 전에 마당에서 풀을 뽑고 있는데 웬 남자가 "방에 불은 따뜻하게 넣고 사십니까?" 하면서 대문을 들어서더란다. 무슨 일인가 얘기를 들어봤더니 자기는 면장님이 보내서 온 면사무소 공무원이고, 할머니를 한 달에 45만원씩 생계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1종 영세민으로 만들어 드릴 수 있는데 그러려면 45만원이 필요하다고 했단다.
이 할머니는 그 말이 너무 고마워서 장롱 속에 꼭꼭 숨겨둔 돈다발을 몽땅 꺼내 그 사람에게 주었단다. 설마 그 사람들이 돈을 더 가져가랴 싶어서 60만원을 꺼내 세어가라고 했다는 것. 그랬더니 45만원을 세고 나머지는 "이건 터 도지 주세요" 하면서 돌려주었단다.
그래서 할머니는 정말로 45만원만 가져간 줄 알았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50만원을 가져가고 10만원만 돌려줬다고. 그렇게 돈을 챙긴 그 사람은 올해는 영세민이 안 되고 내년 설 쇠고 나면 될 수 있을 거라면서 다음 달에 다시 들르겠다고 얘기하고 갔단다.
잠깐 사이에 할머니는 한푼 두푼 자식들이 준 용돈을 모은 돈을 사기꾼에게 털린 것이다. 그 돈으로 겨울을 지낼 보일러 기름도 사고, 터 도지도 주고, 쌀도 사고 할 계획이었다는데 그렇게 몽땅 사기를 당한 것이다.
그런데 사기꾼을 보내면서 할머니는 영세민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며 두 손을 모아 꾸벅꾸벅 큰 절을 세 번이나 해서 보내셨단다. 알고보니 아랫마을 할머니 한 분이 하루 전에 같은 사람에게 250만 원을 사기 당했다고 한단다. 아차 싶었다는 할머니는 경찰에 신고도 했지만 그 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단다.
딸과 아들에게도 결국 얘기가 들어가 아들이 그만큼의 돈을 다시 마련해 주기야 하겠지만 애들 볼 면목이 없어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여전히 걱정이 많다.
그러면서도 "다음 달에 그 사람이 다시 온다고 했으니, 그때 그 사람이 다시 오면 그때 남긴 돈이 15만 원이 아니라 10만 원밖에 안 되던데요 하는 말을 내가 꼭 할라 그래"라고 하신다. 그 사기꾼이 다시 올 리도 없을 텐데, 할머니는 아직도 혹시나 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 일을 당하고 나서 밥 맛도 없고 기운도 하나도 없다는 할머니는 혹시나 혼자 있다가 몸이라도 더 아플까봐 걱정이 되서 허리 아픈 약을 가지러 오셨단다.
허리 아플 때 먹는 약을 지어 드리고, 많이 자란 손톱을 보면서도 오늘내일 미루기만 했다는 손톱을 깎아 드렸다. 집까지 걸어가시겠다는 얘기에 따뜻한 차 한 잔을 드리고 차 조심해서 잘 가시라고 배웅해 드렸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노인들, 특히 혼자 사시는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을 찾아 다니면서 공무원을 사칭해 영세민 1종을 시켜주겠다고 사기를 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젊은 사람도 아니고 나이 50대 후반쯤으로 보인다는 그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세상을 사는 것인지 궁금하다.
자식들과 떨어져 지내는 노인들은 자신에게 조금만 따뜻하게 대해주면 쉽게 그 사람 말을 믿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전혀 엉뚱한 곳에서 피해를 보게 되는 일이 생기곤 하는데, 이번 일도 그 사기꾼이 처음부터 아주 친절하고 상냥하게 할머니의 이런 저런 속상한 얘기를 다 들어줬단다. 그래서 쉽게 할머니 주머니가 열린 것이고, 힘들게 모은 목돈을 잃게 된 것이다.
연세 드신 부모님들에게 전화도 자주하고, 아무리 바빠도 자주 찾아뵙기도 하면서 부모님의 말상대가 되어 드렸다면, 이런 목돈이 나가는 일을 노인 혼자서 결정하진 않았을 텐데…. 그러면 노인들의 피해도 그만큼 줄어들지 않았을까 싶다.
2004/11/25 오전 10:46
ⓒ 2004 OhmyNews
이금희 기자는 보건진료소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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