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자료실

동양인에게는 유교나 불교가 좋지 않는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5-10 20:13 조회1,725회 댓글0건

본문

김성윤: 한국 사람에게는 한국 종교가 좋지 않은가  라는 그런 말씀을 했지 않습니까?

노우호: 예, 한국 종교라는 말이 사실 한국 종교는 별로 없고요 종교는 거의 큰 종교는 인도라든지 이스라엘 그쪽에서 발생을 했는데 많은 분파가 생겨오고 또는 한국에서 혹 몇몇 종교가 최근에 신흥종교로 생겨났지만 참된 종교적 진리를 다 섭럽하지 못한 채 너무 섣불리 종교를 만들어 냈다고 봅니다.

종교라고 하는 것이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데 어떤 종교를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는.. 그런 내용으로 종교를 만들어 내는데 그래도 사람들은 그것을 따라가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시간 이야기를 같이 들으면서 종교에 대한 분별력, 변별력을 길렀으면 좋겠습니다.

김성윤: 특히 동양인들에게는 많은 종교가 있잖아요

노우호: 모든 종교가 동양에서 나왔으니까요

특히 한국에서 믿는 종교가 한 두 가지가 아니고 이 시간을 통해서 알다시피 수 차례 많은 종교를 알게 됐는데요.

유교는 사실 그대로 종교라기 보다도 철학 내지는 윤리적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고요 불교도 근본 적으로 파고들면 하나의 철학입니다. 즉, 유교나 불교가 비슷한 시기 BC6세기경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 한국에서 유교나 불교가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심성을 다스려 왔기 때문에 친숙하게 느껴지는가 봐요 이걸로 족하게 생각하는 거죠 유교와 불교만 있으면 됐지 도 뭐 다른 종교를 들어올 필요가 있느냐 이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유교도 불교도 깊이 연구하지 않는 분들이 이렇게 생각하게 되고 또 현대인들이 너무 바빠서 종교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신문 보듯이 한번 훑어 봐 가지고 이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가을이 깊어지면서 물질 문명에 의해 가지고 사람의 정신 문화가 파괴된다고 하는 이런 시대에, 조용한 시간에 진리의 말씀에 정말 귀를 기울이는 그런 좋은 시간 있기를 바랍니다. 

김성윤: 유교는 사실 공자를 시조로 하는 중국 고대의 대표적 사상이라 할 수 있고요

노우호: 예, 중국의 종교 그리고 또 난세를 구하는 것은 법률이나 군사로는 안되고 인간을 사랑하는 『인』 어질 인(仁)자를 쓴 거죠 인간을 참 사랑하는 인애(仁愛) 라고 하는.. 영어 세계나 성경에서 말하는 친절(Kindness) 이라고 하는 그런 것이 중요하다

『인』하는 것을 서양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공자가 무엇을 말했느냐 『인』을 강조했다

즉, 힘으로 하지말고 또 딱딱한 법으로 하지말고 역시 부드러운 『인』이 인간을 지배할 때 그리고 그것을 다시 예절로 만들어서 우리가 인간된 도리를 다할 때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한 건데 굉장히 놀라운 사상이죠 이러한 때에 불교도 출발하고 합니다 마는 불교는 사실상 독자적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고 석가모니가 무슨 큰 계시를 받아서 출발한 것이 아니고 그 앞에 불교 이전에 인도를 다스리던 종교 인도종교는 브라만교라는 종교가 오래 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브라만교의 모순을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나온 게 불교입니다. 석가모니가 왜냐하면 인도에서 오래 전부터 있어온 브라만교는 다신론 종교입니다. 신이 하도 많아서 신의 수가 사람의 수보다 많을지 몰라요 많은 신을 섬기느라고 사람들이 특히 평민들이나 노예들이 신을 섬기느라고 자기 삶을 살지 못하는 신 때문에 사람들이 위축되어 가지고 모든 신들에게 제물을 갖다 바치느라고 자기 인생을 살지 못하는 그러한 모순을 석가모니가 발견하고 이를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나섰습니다.

오늘날 불교도 냉철한 비판정신 비방이 아니고 분별하고 비판하는 정신이 있었다면 한국 나라나 한국 국민들이 이렇게되지 안았을 텐데 우리 한국에 들어오면서부터 한국인의 심성에 의해서 불교의 그 냉철함은 없어져버리고

오히려 불교가 사람들을 더 어둡게 만들어버리는.. 많은 경전을 가지고 사람들을 불교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는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봅니다.

제가 우리 가정이 오랜 불교의 가정으로 지내 왔지만 우리 어머니나 우리 아버지가 불교에 대해서 기본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막연히 불도 한다, 불교 한다, 하면서도 경전 한 페이지 만져 본적도 없고 불교에 대한 기본 교리나 체계를 전혀 이해 못하고 그러면서 불교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동양인에게 유교나 불교만 있으면 됐지 않느냐 하는 것은

사실 아무 종교도 안 믿겠다는 것과 똑 같은 그런 무성의하고 무관심한 그런 표현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적어도 공자님의 가르침이 맹자나 순자에 의해서 체계화되어 중국에서는 BC 2세기경 한무제 시대에 국교로 채용 될 정도로 그렇게 되었고 우리 한반도에도 이조 시대는 이것을 건국 이념과 같이 그렇게 받아들인 거죠. 그래서 한국에 들어온 유교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고 굉장히 고도로 높은 수준의 유교가 들어와서 중국서보다도 유교가 한국서 더 발전했다고 봅니다.

우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위대한 점을 드러내지 못하고 사대주의 사상이 있어 가지고 중국 것만 큰 걸로 대국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한국의 위대한 유학자들이 중국에 유학자 못잖은 대단한 학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체적으로 유교가 변천되어있는데요 유교가 얼마나 많이 변천했나 하면 처음에 공자 맹자 이런 때에 비해서 순자 같은 분은 맹자와 같은 시대 사람이지만 전혀 또 다른 체계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이것이 이 사회에 별로 힘이 없다 유교라는 것이 별로 구속력이 없다 또 힘이 없다 하는걸 느끼면서 송대에 와서는 송나라 시대 그때는 주돈 이라든지 정호, 정희, 장재, 주희 이런 분들이 다시 이걸 새롭게 유교가 거듭나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제 유교가 주자학으로 이름이 바뀌어지게 돼요 그래서 유교라고 말하지 않고 주자학 「학」이죠 그 주자학으로 가다가 다시 명나라 시대에는 결국 성리학으로 변천이 됩니다.

그래서 유교가 아니고 주자학으로 성리학으로 그렇게 되는데 물론 하나의 학풍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성리학으로 되었을 때 우리 한국이 빨리 받아들여서 나중에 이황이라든지 이이, 이퇴계 선생 이런 분이 대표적인 학자가 됐는데

성리학의 특징은 정주학 절대 우위 어떤 주지주의 경향 그리고 『예』를 절대시하는 풍토, 명분론 사고 이런 것 때문에 당파 싸움을 불러오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명분에 대해서 지나치게 그저 주지주의로 기울어지면서 어떤 철학적 학파처럼 그렇게 되면서 이것이 당파 싸움을 가져오고 나라를 망치게 되는 그런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그 다음 시대 그 이후에 이것이 다시 성리학에서 양명학으로 또 바뀌어지게됩니다. 유교가 명나라시대에 양수인이 세운 유교가 철학의 한 파로써 주자학은 너무 번거롭고 이야기가 너무 길고 혼잡하고 복잡하다 해 가지고 이것을 단순화하면서 간단 명료하게 깨달음을 갖자 쉽게 해보자 이렇게 하면서 이론에 이론을 자꾸 만들어 내니까 예를들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이 자꾸 이론에서 이론을 만들어 내서 탈무드를 만들어 가지고 혼잡하게 한다고 했던 것처럼

유교도 주자학 성리학 하면서 굉장히 복잡해지니까 그렇게 복잡한 것을 서민들이 누가 알아듣겠나 그래서 이 양명학에서는 쉽게 깨달을 수 있는 이런 학풍을 만들어 보자 이것이 양명학이죠. 그래서 양명학은 심즉이(心卽理) 즉, 마음에 떠오르는 것이 이치다. 마음 그 자체가 곧 이치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래서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일치시켜 가지고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  그기에 도달하게 되죠 우리가 이제 기독교인들이 믿음과 행위를 강조하듯이

주자학이나 성리학이이 너무 이론적이다 말이죠 너무 그래서 실천적인 것이 없고 나중에 이론만 나오면 이론이 사람들을 싸움만 붙이는 그런 쪽으로 가니까 이것을 정말 아는 대로 실천하는 양명학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하다가 그 양명학 하는 것도 오래가지 못하고 이제 아무래도 유교 같은 것을 보면 노동이라든지 기술이라든지 공업이나 상업 이런 걸 천시한다 말이죠 자꾸 앉아 가지고 머리만 굴리고 입만 발전시키는 그런 이론 그것이 결국 서양문물이 서양 기독교가 과학적인 사고방식에 의해 빨리빨리 발전하는 것에 비해서 동양이 뒤지는 것을 보면     조선후기쯤 됐을 때는 이것이 실학으로 발전하게 되는 거죠 실제적으로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래서 실제적으로 우리 삶에 유익을 주는 그런 쪽으로 가자 그래서 이게 정치, 경제, 질, 언문, 천문, 금석 이런 것까지도 관심을 가지는 쪽으로 갑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유교라는 체제는 종교라기보다도 변천되는 사상의 흐름처럼 그렇게 되어 있는 거죠 그래서 유교를 종교로 봐서는 안된다 하는 그런 견해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결국 유교흐름은 사서오경을 해석하는 단계에서 주자학으로 성리학으로 발전하고 나중에 양명학으로 실학으로 그러면 현대 과학 기술 문명으로 오는 겁니다.

그것은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그것이 유교 속에 있는 윤리 면에서는 우리가 다시 부흥시킨다든지 다시 되찾아 보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나 유교 그 자체는 종교가 된다든지 이렇게 볼 수는 없고요.  불교는 하나의 종교 체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종교체계에 대해서 원래 석가모니의 가르침대로 하면 종교가 안됩니다.

안 되는데 사람이 석가모니를 신처럼 숭배하면서 종교의 형상으로 만든 것이거든요 그래서 유교도 불교도 깊이 공부를 하게 되면 아! 이걸 가지고는 만족되지 안는구나 하고 속히 알게 될텐데 유교, 불교를 깊이 공부 안 해본 사람들이 유교나 불교 같은 종교만 우리에게 있으면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말한다 말이죠 정말 유교나 불교에 대해서나 어느 종교에 대해서도 깊이 공부를 하신 분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사상이나 종교 가지고 만족을 못한다는 사실을 통감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그래서 참 우리영혼 우리사람이 깊은 곳에서 갈구하는 것은 절대자 하나님을 만날 때 까지는 종교적 사상적 방황은 끝이 없다고 봅니다.

김성윤: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동양인에게는 유교나 불교가 좋지 않은가 에 대해서 말씀 나눴습니다.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 이셨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